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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땅, 대립의 현장 - 강정마을

Free Backpacker의 여행 이야기/우리땅과의 만남

by Free backpacker 2011. 10. 18.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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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7코스...
그 7코스의 아름다움은 사진으로도, 말로도 담아낼 수 없을만큼 큰 감동이었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을 온 마음으로 만나며 평화롭게 걷던 여정...

그 여정의 한 복판에는 강정마을이 있었다.
매체들을 통해 막연하게 "사건"으로만 알았던 강정마을...
하지만 올레 7코스를 따라 걸으면서 강정마을을 "사건"으로가 아니라
"삶의 자리"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 


강정마을은 전국 유일의 용암 너럭바위인 '구럼비'가 있고,
천연기념물 422호인 '연산호'군락과 멸종 위기종인 '붉은발 말똥게'와 맹꽁이, 제주 새뱅이가 살고 있어
유네스코에서 공식지정한 생물권 절대보전지역이라고 한다.
또한, 바위틈에서 솟아올라오는 용천수인 '할망물'이 있어 물이 귀한 제주에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은어가 살고 있는 서귀포 시민들의 식수원인 강정천 역시 이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자연이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이곳에 해군 기지가 들어서게 된다.
구럼비 해변을 파괴하고 콘크리트로 제방을 쌓음으로써 수많은 생명체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죽게 되는 것이다.




자연은 한 번 파괴하면 돌이킬 수 없기에
이 재앙을 막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편에서는 이런 본질적인 메시지를 무시한 채 일방적인 공사를 강행하고 있었다.


강정마을 지역으로 들어서자 저렇게 순찰을 도는 경찰 병력을 엄청나게 만날 수 있었다.
자연과 벗하며 순례하듯 평화로운 마음으로 조용히 올레길을 걷다 마주치는 경찰병력...
한 두 군데도 아니고 요소요소에서 걸어가는 나를 감시하듯 지켜보는 그들의 시선이
참 많이 부담스러웠고, 그 시선들 속에서 마음의 평화는 깨질 수밖에 없었다.

나도 전경으로 근무를 했었고, 그들이 자신의 의지대로 근무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공권력의 표상인 그들이 불편해 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군 복무를 하느라 명령을 받고 그곳에서 근무하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의 냉랭한 시선을 받아야만 하는 그들 역시 어쩌면 또 다른 피해자일 것이다.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 또 하나의 명소가 탄생합니다..."
참 대단한 역설이다...

이미 자연이 빚어 낸 아름다움으로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이 곳을 
콘크리트로 뭉개버리고 인위적으로 나무를 심고 건물을 지으면 정말 명소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음~ 명소가 되긴 될 수 있겠다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
수많은 생명체에게 얼마나 몹쓸짓을 했는지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그런 명소...

 

 

올레꾼들에게 강정마을이 처한 상황을 알려주고, 강정마을 뱃지와 안내 팜플렛을 나누어 주시며
관심을 가져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시던 분...
저분의 진심이 마음으로 느껴지면서 얼마나 내가 관심이 없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강정마을을 한 번 들러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 날 강정마을을 찾아보기 위해 일부러 길을 나선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아름답다고 추천하는 올레 7코스를 걷고자 했을 뿐이고, 그 7코스에 강정마을이 있었던 것이다.
강정마을에 대한 많은 보도를 접하고, 특히 사제단의 활동을 접하면서
그저 막연하게 해군기지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직접 공사 현장을 보고, 곳곳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현수막들을 만나고,
저렇게 진심으로 호소하는 분들을 만나면서 마음 속에 커다란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전경버스 앞, 해군기지 공사장 출입문 앞에서 저렇게 혼자서 활동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을텐데...
힘 내세요... 그리고 많이 많이 알려 주세요...


 


이곳은 농성장이다...
이곳에도 강정 마을이 처한 상황을 알리며 관심을 촉구하는 분들이 계셨다.

이곳 담장 너머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대량으로 발굴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담장 너머로 바라본 곳에는 유물터를 표시해 놓은 곳이 있었다.
이런 유물이 대량 발굴되면 공사를 중단하고 문화재 조사를 실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조차 무시한 채 공사가 강행되고 있다고 한다.

무엇을 위한 공사이고, 누구를 위한 공사일까...
해군기지 유치 결정은 설명회 한 번 없이 기습적으로 이루어 졌다고 한다.
주민 1900여명 중 87명만 참가한 마을 총회에서 결정이 이루어졌고,
주민들이 유치 결정을 주도한 마을회장을 해임하고 725명이 투표를 해서 94%인 680명이 반대를 결정했음에도
정부는 모른체하며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 설명을 듣고 참 많이 씁쓸했다...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창조질서를 보존해야 할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생명을 파괴한다는 것...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혹자는 왜 천주교가 자꾸 정치적인 일에 개입하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천주교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선포하는 게 아니다.

이번에 강정마을을 둘러보면서 마음으로 절실하게 느껴진 것은 
인간의 손에 의해 아무런 힘도 없이 무참히 죽어가는 생명들의 아픈 신음이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창조질서가 무너지고 하느님의 정의가 짖밟힐 때,
최소한의 대안이나 환경을 살리기 위한 고민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수많은 생명체들이 떼죽음에 처하게 되는 불의가 저질러질 때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 선포하고, 세상이 하느님의 정의에 따라갈 수 있도록 선포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다.

교회마저 세상의 기준과 가치에 따라 물질적 가치와 개발 이익만을 추종하며
죽어가는 생명을 외면하고 하느님의 뜻을 지켜내지 않으면
이 땅에 어찌 하느님 나라가 실현될 수 있겠는가?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자연과 평화를 지키려 하는 민중들의 울림에 귀를 기울이고
자연의 모든 생명들이 더불어 살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평화이고,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무기와 군사기지를 담보로 평화를 지켜낸다는 것은
또 다른 두려움의 표현이고, 또 다른 과시요 협박일 뿐
이미 진정한 평화가 될 수 없다.


누군가가 공사장을 가르는 벽에 써 놓은 글...
참 많은 것을 내 마음에 전해주고 있었다.

이 벽이 사람을 막을 수는 있어도, 수많은 사람들의 외침을 차단할 수는 있어도
그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의 정신과 삶의 흔적조차 지울 수는 없다는 것...
참으로 큰 울림으로 다가왔었다.

강정마을 한 번쯤은 다녀와야겠다는 막연한 생각 속에서
별 생각 없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올레길 7코스를 걷다가 만난 강정마을...

강정마을의 현실은 무뎌진 내 마음을 참 많이 일깨워 주었다.
길가에 붙어 있는 현수막 하나 하나, 담장에 적혀진 수많은 글들...
그 속에 담긴 간절한 마음들과 생명을 지켜내고자 하는 순수한 염원들이
내  마음 속에서 큰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정의를 선포하고, 하느님의 뜻을 지켜내야 할
내 삶의 태도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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