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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명동성당

영혼이 머무는 자리/하느님 그리고 나...

by Free backpacker 2011. 8. 1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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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교구 주교좌 명동 대성당은 명실공히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이자 심장이다.
이곳은 한국 교회 공동체가 처음으로 탄생한 곳이자 여러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진 곳이기도 하다.
2천 년 교회사 안에서 유례 없이 한국 천주교회는 한국인 스스로의 손으로 창립됐다.

한국 천주교회의 출발은 1784년 봄,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한 뒤 귀국한 때로부터 치지만

그보다 4년이 앞선 1780년 1월 천진암에서는 권철신을 중심으로 하는 강학회가 열렸고
여기에서 당시의 저명한 소장 학자들은 천주학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 해 가을, 서울 명례방에 살던 통역관 김범우는 이들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에 입교하고

자신의 집에서 교회 예절 거행과 교리 강좌를 열게 된다.
그럼으로써 수도 한복판에 겨레 구원 성업의 터전을 닦았고
바로 이곳에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의 산 역사인 명동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 명동성당 홈페이지에서...






어제 대학원 학위 수여식이 있었고, 부모님께서 참석하기를 원하셔서 모시고 다녀왔다.

나야 대학원 때문에, 일 때문에 1주에 2~3번씩 서울을 다니지만
부모님은 그닥 서울에 올라가실 일이 없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KTX도 한 번 타 보시고, 명동성당이라도 모시고 가기로 하고 아주 일찍 길을 나섰다...

그런데 왜 내가 카메라만 들고 나서면 비가 오는지...
어제도 어김없이 비는 내렸고, 때문에 렌즈를 새로 샀음에도 불구하고 화창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ㅜㅜ
그런데 비 내리는 성당도 나름 운치있었다.
세상을 감싸듯 두 팔을 벌리고 계신 예수님...
비에 젖은 예수님상은 왠지 마음 한켠에 작은 움직임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1882년 명동은 한미수호 조약의 체결로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될 것을 예견한 제7대 교구장 블랑 주교에 의해
성당 터로 매입된다.
블랑 주교는 이 곳에다 우선 종현 서당을 설립, 운영하면서 예비 신학생을 양성하는 한편
성당 건립을 추진해 한
불 수호 통상 조약(1886년)을 체결한 이듬해인 1887년 5월,
대지를 마저 구입하면서 그 해 겨울부터 언덕을 깍아 내는 정지 작업을 시작했다.


신자들의 열성으로 시작된 명동 대성당의 정지 작업은 풍수 지리설을 내세운 정부와의 부지 소유권 분쟁에 휘말려
4년이 지난 1892년 5월 8일에 가서야 기공식을 갖는다.
 사이 초대 주임 블랑 주교가 1890년 선종하고 두세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당 설계와 공사의 지휘 감독은 코스트 신부가 맡았는데 그는 약현(현 중림동) 성당과 용산 신학교의 설계 감독도 맡았다.

코스트 신부가 1896년 선종하고 그 뒤를 이은 프와넬 신부에 이르러서야 성당 건축을 마무리 짓고
드디어 1898년 5월 29일 성신 강림 대축일에 조선 교구장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역사적인 축성식을 가졌다."  
- 명동성당 홈페이지에서...



성당에 들어 왔으니 잠시 기도를...

 

 

성당을 나온 내 시선을 한 번에 잡아 끌었던 조각이다.
조각 앞에는 "작품명 : 사형선고 받으심"이라고 써 있었다.
깊은 상념에 잠겨 있는 듯한 복잡한 표정과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가시관과 
3개의 못...
 
우산을 쓰고 저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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